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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샤이닝, 글리밍, 스파클링

by 황토 땅지기 19학번 김세현 2021. 8. 9.

강원도 영월의 밤

샤이닝, 글리밍, 스파클링

 

유예지

 

https://youtu.be/bhGIKHQUuWY

 

  우리가 강원도에 간 건 다분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냥, 여름이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해도 되는 나이였고, 학기 중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죽을 둥 살 둥 일하며 번 돈이 통장에 차질 없이 입금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이와 나는 같은 단과대, 다른 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각자 좋아하는 작품의 소묘를 그리고 파트너의 그림을 대신해 발표하는 미술 교양 조별 과제에서 우연히 같은 조가 됐다. 우리는 군대에서 막 돌아온 복학생으로, 매우 불성실했고, 제이의 그림 실력은 형편없었으며, 까칠하기로 유명한 대머리 교수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나는 제이가 연필을 잡고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는 순간 재수강을 확신했고, 기어코 제이를 꼬드겨서 출석은 고사하고 같이 술이나 퍼마시러 다녔다.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는 교수가 우리를 찾는댔고, 제이와 나는 그 기분 나쁜 의문과 불안감을 안주 삼아 별 영양가 없는 개그나 지껄이다 끝내 교수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했다. 나중에 소문을 듣자 하니 제이의 그림은 그 교양 수업 오티 때마다 소환되어 교수에게 까였고, 우리는 어느새 경영대의 이름 모를 빌런이 되어있었다. 제이는 자기 그림에도 나름의 철학이 있는데, 최소한 저작권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투덜댔지만, 나의 제출물은 애초부터 백지였기에 성적표에 깊이 박힌 F가 미치도록 억울하진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번 학기 학점 망하면 자퇴나 할 거라고 신나게 떠들고 다녔다. 경영이니, 회계니 하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오기였나. 멀쩡히 돌아가는 세상이 그렇게도 미웠다.

 

    첫 번째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귀하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지겨운 불합격 소식을 연달아 열 번 가까이 보니 세상에 넌더리가 났다. 미술을 그만둔다는 건 미대 입시생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스물의 나는 덜컥 겁부터 냈다. 수많은 새로고침과 무수한 시도 끝에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보다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고3에게 9광탈은 사망선고와 같다. 그런 식의 단언은 너무 가혹하다. 맥이 풀렸다. 무엇 때문에 미술을 시작했고 왜 손에서 놓지 못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열하나부터 열아홉까지 한 미술을 포기하고 놓았던 펜을 다시 쥐었다. 그렇게 후년에 적당히 괜찮은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시기에 복학하지 않았다면, 같은 교양 수업이라는 접점이 없었다면 제이와 나는 서로를 평생 모른 채 살았을 거다. 나는 외강내유의 정석, 제이는 외유내강의 정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려서부터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었던 나와 달리 제이는 엄친아 같은 삶을 살았고, 또 그런 정석적인 삶을 추구했다. 나는 재수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머리카락을 학대하는 수준으로 색을 입혀댔고, 날씨가 덥든 춥든 항상 닥터마틴 1460 8홀 워커만을 고집했지만, 제이는 단정한 검은 투블럭, 흰 셔츠에 청바지, 스니커즈, 백팩을 선호했다. 딱 봐도 지루한 스타일이지만 동기는 경영대 여자애들 사이에선 말갛고 잘난 얼굴로 나름 유명하다고 했다.

 

    우리는 학점을 함께 말아 먹었다는 동지애로 그렇게 거의 일 년을 딱 붙어 다녔고, 가깝게 지내다 보니 듣는 수업도 전공을 제외하곤 거의 비슷했던 터라 서로 방전되는 지점이 같았다. 나는 종강을 앞둔 유월, 경영관과 운동장 사이 구석에 마련된 작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제이에게 야, 우리 팔 월에 여행이나 갈까. 했고, 유리창 너머로 나를 주시하던 제이는 내 말을 용케 알아듣고 좋아요. 했다. 뿌연 숨을 내뱉으며 매캐한 담배 연기가 새어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강원도에 간 이유는 정말 그게 다다. 그날 밤부터 구인구직 사이트란 사이트는 다 뒤져서 겨우 알바 자리를 잡았다. 주휴수당 안 주려고 알바를 여러 명 뽑아 딱 14시간씩만 부리며 돌려막는 데였지만 단타로 치고 빠진다 생각하고 꾹 참았다. 사람이란 게 간사해서 통장에 돈이 꽂히니 노동청에 신고해버리겠다는 마음도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온화함으로 바뀌었다. 제이는 고모가 하는 카페에서 한 달 동안 알바를 했다. 고모가 너 오고 매출 올랐다고 안 좋아하시디? 물어봤더니 어떻게 알았어요? 대꾸했다. 하여간 눈치 없네. 턱으로 제이를 가리키며 손으로 얼굴을 몇 번 쓰니, 에이 방학이라 그렇죠. 눈을 접고 헤헤 웃었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우리는 렌터카 대신 뚜벅이를 택했다. 나름의 낭만이라고 생각했고, 제이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나는 원체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큰 공을 들이지 않는 타입이라, 후에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아도 미련 없이 수긍하는 편이다. 이것 또한 내 운명이겠거니 하고. 그래서 동기들은 이런 나를 수긍의 사나이 혹은 원효대사 마인드로 불렀다.

 

 

 -출발터미널은 여기, 동서울터미널이고 도착지는 영월, 출발일 8월 14일, 출발 시각은 14시 35분이시고, 성인 2분 예매하셔서 총 35,800원입니다.

 

  아무리 내가 총무를 맡았다지만 경제학도라는 애가 용케 딱 지갑만 집에 두고 왔다. 민증은 핸드폰 케이스에 끼고 다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고딩 동생을 데리고 여행 온 딴따라 백수 총각으로 오해받을 뻔했다. 여행 전까지 제이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이고 허술한 준비성을 지니고 있는 애인 줄은 몰랐다. 적극과 허술 모두 평소의 제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으니까. 하지만 터미널 입구에서 해맑게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제이의 뒤편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묵직한 캐리어를 보고 이번 여행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고작 3박 4일 여행이라 세면도구, 여벌 옷 위아래 한 벌씩이랑 속옷만 챙겨갔던 나에 비해 제이의 짐은 너무 본격적이었다. 입을 옷 위아래로 두 벌씩, 카메라에, 혹시라도 필요할 망원경과 선글라스까지…. 필요할 만한 걸 하나씩 챙기다 보니 새로 산 20인치 캐리어가 꽉 찼다는 게 제이의 설명이었다.

 

 -너 엠티 안 가봤어?

 -가봤죠.

 -근데 짐을 이렇게 들고 와?

 -엠티가 아니라 여행이니까요.

 -나도 여행이라 특별히 가방에 챙겨온 거야. 엠티였으면 모자만 갖고오지.

 -솔직히 무겁긴 한데…. 필요한 것만 챙겼어요.

 -그래….

 

    제이는 이왕이면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회색빛 서울에 늙고 지친 도시 쥐냐며 깝죽대다가 이내 사람이 복작대는 춘천 닭갈비 골목을 떠올리곤 단번에 영월에 있는 펜션을 예약했다. 강원도는 역시 산골짜기로 들어가야 해. 최대한 인간이 없는 곳으로. 내 말에 제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생긋 웃었다.

 

    무작정 떠나온 것도 아닌데 계획은 없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린 다음, 다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그 뒤론 정말 무계획, 낫띵이었다. 우리는 제이의 제안으로 영월행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숙소 근처에 갈만한 관광지를 검색했다. 팔 월 중순 땡볕 더위에 머리카락 끝만을 살짝 건드리는 에어컨 바람이 감질났다. 코끝에 맺힌 땀을 쓸며 5000원 더 비싼 우등 등급 짜리 버스였다면 더 시원했을까, 잠시 생각했다. 이런 잡생각마저도 창가 쪽에 앉아서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제이는 휴대용 선풍기를 제 얼굴에 갖다 대고 내내 최고 단계로 쐬다 이내 지친 얼굴을 했다. 자꾸만 뜨거워지는 핸드폰 열기에 온몸이 후끈거렸다. 허벅지에 떡 달라붙은 검은 슬랙스가 불쾌했다.

 

   안내 방송 속 여자는 곧 영월에 도착한다고 안내했다. 지금까지 두 시간 정도를 왔으니 십 분 정도 더 가면 영월에 도착하는 셈이었다. 그때부터 제이는 오른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제이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 설레서 그런단다. 훅 치고 들어온 포인트에 컹, 소리를 내며 코로 웃었다. 제이가 나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우리의 대화 패턴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나는 제이가 뱉는 모든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는 순간, 더 이상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우리가 같은 유머 코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제이는 나를 웃겼다는 사실에 안도하기 때문이다. 멍청한 관객과 자기가 멍청한 줄 모르는 광대의 관계는 서로에게 꽤나 흥미롭다. 제이와 나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 각자의 영화에 알짜배기 카메오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가끔은 주연으로 신분 상승해 서로의 일상에 월권을 저지르기도 하며.

   멈추었다 움직이기를 반복하며 버스는 산을 중앙으로 가르는 7번 국도를 달려 거의 영월에 도착했고, 마지막 안내 방송이 나왔을 때 마침내 제이는 눈을 감았다. 결국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우리는 일단 숙소에 가기로 합의했다.

 

   도착한 펜션은 옅은 편백 나무로 지어진 복층 구조였다. 작은 크기였지만 벽 하나를 통창으로 뚫어 놔 커튼을 걷자 창 너머에 푸른 동강이 한눈에 보였다. 은은한 나무 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그래서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안 풀고 둘 다 저녁까지 퍼질러 잤다. 우리는 안일했다. 하지만 조금 안일해도 괜찮았다. 우리에겐 아무 계획도 없었으니까. 일어나서는 퉁퉁 부은 얼굴로 천천히 짐(거의 대부분 제이의 것)을 풀고, 대충 펜션 앞 슈퍼에 가서 라면과 생수, 김치, 맥주 네 캔과 주전부리를 사서 야무지게 먹었다. 우리는 음식을 씹는 내내 무심한 얼굴로 9시 뉴스를 응시하다가 이내 흥미를 잃어 VOD 무료 영화를 찾았고, 제목에 엄마, 형수 등이 붙는 부도덕한 19금 영화를 제외하고 가장 볼 만했던 <세 얼간이>를 봤다. 그러다 감성에 젖어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으나 깊게 파고들지 못하고 그저 알, 이즈, 웰 그 한 문장에 사로잡혀 횡설수설하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

 

 

   다음날에는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헬멧을 쓴 채로 동굴 체험을 하고, 얼떨결에 옆에 딸린 탄광 박물관까지 갔다. 그러다가 배고프면 주변 식당가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멸치 칼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다시 좀 걷다가 절이 나오면 얼떨결에 들어가서 소원을 빌고, 절밥도 얻어먹고, 명상도 좀 하고, 해가 질 때쯤에 별이 쏟아질 듯한 하늘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영월에 오고 쭉 이틀을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누볐다. 펜션 바닥에 쭈그려 앉아 함께 캔맥을 마시다 문득 모처럼 강원도까지 내려왔는데 너무 뭍으로만 나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이에게 지금 당장 바다에 가자고 했고, 제이는 시간이 늦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영월에서 바다까지는 너무 멀어서 가장 가까운 바다도 최소한 두 시간 정도는 걸린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숙소 앞 동강에나 갔다. 강가의 더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잔잔히 일렁이는 수면을 응시했다. 흉곽을 한껏 열어 동강의 습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핸드폰에선 저스틴비버 새 앨범의 타이틀 곡이 끝난 후, Official髭男dism의 <Pretender>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제이와 나는 드림 베이스에 맞춰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키미토노 라부스토오리이 소레와 요소오도오리, 첫 소절을 흥얼거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평생 이 시공간을 청춘이라는 간지러운 단어로 규정할 거라 확신했다.

    아빠가 스물 아홉 끝자락에 갔던 도쿄의 밤거리를, 엄마가 자신의 셋째 언니와 함께 왕가위의 DVD를 사러 갔던 홍콩에서 본 현란한 네온사인을 지금도 종종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끔 심심한 밤을 밝힐 찬란한 에피소드 하나가 생긴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하늘을 바라보는 제이의 뒤통수가 동그랬다.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제이의 눈에 서린 별이 손에 들고 있던 스파클라 폭죽처럼 반짝였다. 폭죽은 2분가량 더운 빛을 발하고 언제 타올랐냐는 듯 차게 식었다.

 

    우리 내일이면 다시 돌아가야 하네. 아쉽다. 말을 끝마치자마자 옆에서 미세하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야 너 울어? 취했냐? 아까 유난히 빨리 달리긴 하더라. 제이는 나의 추궁이 듣기 싫다는 듯 입꼬리를 한껏 내린 채 오른팔로 눈을 가렸다. 술기운으로 빨개진 제이의 귓바퀴가 보였다. 형 제 미래 어떡하죠. 이게 대체 뭔소리야. 왜 갑자기 우울 모드인데. 여행 마지막날 강가에서 대성통곡하는 대학 동기를 본 대한민국 국적의 스물네 살 남성처럼. 제이가 잔뜩 울어 벌게진 눈을 흘겼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일단은 등을 문질러줬다. 혹시라도 진짜로 절망적인 이유가 있으면 어떡해. 집 안이 풍비박산 났다든가,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등록금을 낼 돈이 부족하다든가, 혹시라도 원인 모를 불치병에 걸렸다든가…. 아 진짜, 형 때문에 교양 F 받았잖아요. 내 학점 책임져요. 흐엉엉.

 

   참나, 나는 주제넘게도 혼자만의 감성에 젖어 우리의 대화가 조금 더 유의미하고 감동적인 방향으로 향하길 바랐다. 내가 제이를 너무 평면적인 인간으로 생각했다. 너도 굴곡이 있는 인간이었구나. 난 여행 오기 전까지 너 사이보그 인간인 줄 알았잖아. 어깨를 수차례 내리치며 푸하하, 웃자 제이는 억울하다는 듯 아 진짜, 를 연발하며 미약하게 나를 밀쳤고, 마침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결국 제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 우리는 그 독하다는 영월 산모기의 밥이 되었고, 온몸 구석구석을 처참히 뜯긴 채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제이가 캐리어 안에 챙겨온 물건의 반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영월을 떴다. 서울로 돌아오는 22,900원짜리 우등 버스에서 내내 긁은 팔엔 피가 맺혔다.

 

 

 -제이야, 난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 동강에서 말이야….

 -아 또 시작이네. 술 취해서 그런 거라니까요.

 -네 유리구슬 같은 여린 마음, 형이 잘 안다. 힘든 일 있으면 형한테 꼭 말하고. 응?

 -예, 예.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혔다. 청량한 소리에 뒤이어 묵직한 탄산이 목구멍을 쳤다. 나는 제이와 잔을 마주할 때마다 영월 여행 후 나에게 남은 거라곤 자신조차 몰랐던 너의 실체와 반짝임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제이는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잔잔히 흐르는 별의 무도와, 여름 밤 목구멍을 치는 시원한 맥주의 탄산과, 필라멘트의 어지러운 빛의 움직임과, 동강의 은빛 반짝임과, 스파클라의 미약한 폭발 같은 시답잖은 반짝임이 뒤섞였다. 창밖을 내다보니 벌써 밤이 됐다. 제이와 자주 가던 학교 앞 호프집을 나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별 대신 네온사인이 거리를 밝혔다. 서울에서의 별은 사치다. 문득 우리가 함께 봤던 영월의 밤하늘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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