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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방인

by 황토 땅지기 19학번 김세현 2021. 8. 9.

김천 목동3리

이방인

임은지

 

https://youtu.be/f_xPWhYu2H4

 

   갑자기 33℃까지 올라간 기온에 기운이 쭉 빠져 해류에 휩쓸린 해파리처럼 동료들 사이에서 흐느적거린다. 나와는 달리 기운 좋게 떠들고 있는 동료들을 흐리멍텅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켠다. 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금세 다 마신 건지 커피가 아니라 커피 향 공기만 빨대를 타고 올라온다. 한숨을 내쉬고는 테이크아웃 잔 뚜껑을 열고는 반쯤 녹은 얼음을 입에 털어 넣는다.

 

 “산호 씨는?”

   갑자기 이름이 불리며 시선이 쏠린다. 입에 문 얼음을 뱉을 뻔한 것을 겨우 참고는 날 부른 동기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다들 신나게 대화하고 있는데 나만 입을 다물고 커피만 빨아 마시고 있으니 이상하게 느껴져 부른 것일 테지만, 지금은 딱히 그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다. 특히 사무실로 돌아가는,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는 더더욱.

 

 “휴가 어디로 갔다 왔다고 했지?”

 “아…. 전 김천이요.”

 “김천?”

 “네.”

   동료들은 저마다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괌이니 하와이 같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 화두에 오르다가 여행지로는 유명하지 않은 곳이 갑자기 나오니 떨떠름한 것이다. 김천에 유명한 곳이 있었나, 하고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호 씨 고향이 김천이었어?”

 “비슷해요.”

 

 

    그러니까, 김천에 가게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그리워져서 변덕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는 조용히 쉴 곳이 필요했다. 계약직 기간은 점점 끝나가는데 재계약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별 비전 없이 밥만 축내고 있던 나는 엄마의 눈치를 슬슬 보고 있었기 때문에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우르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는 부채감을 느끼게 했다. 머저리가 된 느낌이었다. 한심하고 멍청하고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느낌. 찝찝하고 꿉꿉한 느낌이 날 자꾸 잠 못 이루게 했다.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그랬던 건지 나는 멀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나서 한껏 불편함을 느낀 다음에, 익숙한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 안락함을 느끼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연락이 온 것은, 핸드폰에는 쥐꼬리만큼 남은 통장 잔고를 띄워놓고 노트북으로는 숙박 예매 사이트를 보면서 도피처를 추리고 있을 때였다. 아빠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오랜만에 전화를 하신 거였다. 내 곁에는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정확한 아빠의 생일을 알지 못했고 아빠에 대한 기억도 그리 많이 있지는 않아서, 할머니의 물기 어린 먹먹한 목소리를 들으며 난 고장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네, 네, 하고 같은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전화를 끊을 때쯤에 할머니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핑계로, 대학에 간 이후에는 알바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으니 시골에 발길을 끊은 지 5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저도 보고 싶노라,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꾹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내심 마음에 두었던 숙소 예매 페이지를 충동적으로 꺼버리고는 말했다. 이번 휴가는 김천에 가겠다고.

 

 ― 여자애 혼자 간다니 왠지 마음이 쓰이네~ 재밌게 지내다 올라가~ 다음에 시간 나면 같이 밥이나 먹자~

 ― 네~ 다음에 봬요ㅎㅎ

 ― 그래~

    그동안 연락 하나 없었던 친척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졌다. 잘 지내냐는 말과 함께, 웬일로 할머니 댁에 갈 생각을 했냐는 게 그 요지였다. 거창한 이유가 없었으니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연락이 불편하고 어색했는데, 묘하게 기뻤던 것 같다.

 

    행선지가 결정되고 난 후 나는 부지런히 짐을 싸면서도 정작 가서 뭘 할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호캉스를 가서도 룸서비스만 시켜 먹고 부대시설은 하나도 이용하지 않은 채 돌아오곤 했으니, 시골에 가서도 방 안에서 조용히 책만 읽고 종일 누워있다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골 촌동네에 무슨 바람이 들어서 가냐고, 가서 무얼 할 생각이냐는 엄마의 물음에도 나는 저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그럴 거면 뭣 하러 김천까지 가냐고 했지만, 다른 곳에 가기엔 돈이 부족했다. 숙박료를 내주지 않을 거라면 말을 얹지 말라는 내 말에 엄마가 조금 언짢아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뭐라 사과하기도 겸연쩍어서 묵묵히 마저 짐을 쌌다. 딱 나흘만 있다가 올게. 나는 사과 대신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던가. 엄마의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초록빛과 회색빛이 부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을 무감하게 응시하다가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차창 밖으로 레고 블록같이 투박하고 조잡하게 생긴 회색 건물이 산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보였다. 애꿎은 산과 나무를 깎아 지은 공장들이었다. 오랫동안 온 적이 없어 미화된 시골의 풍경이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실체를 마주하고는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도 이 주변에 공장이 있었던 것 같았다. 다만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기억들에 밀려 가려진 것뿐.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며칠 전 내린 폭우 때문에 무너진 흙벽이 아직 수습되지 않아 얼룩덜룩했다. 도로 위에 있는 돌은 신경도 쓰지 않고 버스가 그 위를 질주했다. 버스가 태풍을 만나 난파되는 배처럼 연신 덜컹거렸다. 흔들리는 시야에 어지러워 없던 멀미도 생길 것 같았다.

 

    허리와 목을 꼿꼿이 한 채로 오래 앉아 있는 것은 낡고 지친 현대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의자를 조금 뒤로 젖혀보려고 했지만 뒤에 앉은 사람이 오늘따라 버스 안이 왜 이렇게 덥냐고 궁시렁댔기에 눈치가 보였다. 그 대신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려고 창에 머리를 기댔건만, 버스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계속 유리창에 머리를 박았다. 부딪힌 부분이 아프지는 않았으나 짜증이 났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고는 그냥 눈을 감았다. 마침 기계음이 섞인 여자 목소리가 버스 안을 울렸다. 이번 정류장은 농협 하나로 마트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목동 3리…. 이제 곧 도착이었다.

 

    아빠가 반평생을 살았던, 그리고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가 한평생을 살고 있는 김천시에 있는 내창면 목동 3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다 모아도 오십 명이 안 넘는, 그런 작은 동네. 사람 사는 소리보다는 산에서 우짖는 새소리가 더 자주 들리고, 저녁 8시만 돼도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그런 곳. 할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고, 큰삼촌과 고모, 아빠를 낳고, 자식들을 키우고, 애지중지하여 키운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그 자식들이 자식을 낳을 때까지 살고 있었다.

 

    노트북이며 아이패드, 평소에는 읽지도 않았던 책까지 바리바리 챙겨 넣은 가방은 묵직했다. 그 무거운 걸 어깨에 지고 언덕을 올라오느라 등이 땀으로 젖는 바람에 축축해져서, 불쑥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김천까지 올 때보다 거의 다 도착해서 언덕을 오르는 지금이 더 할머니 댁이 멀게만 느껴졌다. 겨우겨우 언덕을 올라 잠시 숨을 돌리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자에 앉아 할머니들이 나를 힐끗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 작은 동네에 젊은 사람이 올 일이 별로 없으니, 신기해서 그런가 보다. 나는 그리 생각하고 다시 걸었다.

 

    얇은 천으로 만든 옷이 피부에 쩍쩍 달라붙었다.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은 대문 앞에 서자마자 짐가방을 반쯤 던지듯이 내려놓고는 옷 앞섬을 붙잡고 들썩였다. 잠시 숨을 고르는데, 집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고, 기억보다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난 할머니가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투박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오랜만에 붙잡은 할머니의 손은 미적지근했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마당이 이렇게 좁았었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마당이 유독 좁아 보여서 낯설었다. 마당 한쪽에 있던 텃밭에는 여전히 파와 부추 같은 것들이 심겨 있었다. 괜히 추억에 젖어서, 코를 찡긋하고는 할머니의 뒤를 따라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차린 것은 없다면서 웃었지만 상에는 누가 봐도 방금 한 것 같은 나물 반찬과 청국장찌개가 상 위에 놓여있었다. 네가 온다길래, 어렸을 때 잘 먹던 것을 해봤다고. 맛있게 먹으라고. 나는 이제 나물 반찬도 잘 먹지 않고, 청국장도 냄새 때문에 입에 잘 대지 않았지만 애써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느이 아빠도 이거 잘 먹었는데 너도 먹어봐, 하며 할머니가 앞으로 밀어준 쪼글쪼글한 나물을 입에 넣고 소가 여물을 씹는 것처럼 천천히 오물거렸다. 어쩐지 조금 무언가를 기대하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려 과장스럽게 맛있다고 했다.

 

 “아빠를 닮았구나. 입맛까지 똑 닮았어.”

 

    쓰기도 하고 조금은 시큼한 맛이 별로였지만, 이 나이를 먹고 구태여 반찬 투정을 하는 게 좀 민망해서 부지런히 밥만 퍼먹었다. 사실 입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평소 밥그릇에 절반만 담아서 먹다가 고봉으로 꾹꾹 담아 놓은 밥을 퍼먹는 것이 가장 고역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잠드셨을 때쯤에. 그러니까 일일연속극이 다 끝난 9시 30분쯤에 내게 전화를 했다. 별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빙빙 돌려서, 할머니께 폐 끼치지 말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깨지 않게 조용히 알겠노라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어쩐지 머리가 좀 아픈 것 같아서 눈을 감았다. 조용하면 잠이 잘 올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날. 며칠 전부터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장마였다. 집이 낡아서 그런지 천장에서 바닥으로 빗물이 또옥 또옥 떨어졌다. 할머니는 창고방에서 양동이를 꺼내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놓고는, 물이 차면 버리라는 말을 남기고 마을 회관에 가셨다. 요 근래에 마을 행사가 있어서 그걸 준비해야 한다고.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봤지만, 가봤자 내가 할 일도 없을 테고 할머니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어쩐지 꺼려져서 집에 있겠다고 했다. 집에 있어도 딱히 할 게 없어서 나는 마냥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봤다. 이 속도로 빗물이 떨어진다면, 한 세 시간 뒤에나 양동이를 비워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할머니가 없으니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집이 낡아서 그런지 이곳저곳에 세월의 흔적과 사람의 손길이 묻어있었다. 현관 바로 앞에 있는 기둥에는 흐릿한 실선이 남아있었다. 큰삼촌, 고모, 그리고 아빠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표시해놓은 것 같았다. 나는 선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아빠의 키를 가늠했다. 14살 이후로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아서 정확히 아빠의 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천천히 다른 곳도 둘러봤다. 큰삼촌이 오실 때마다 쓴다는 안방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고, 안방 맞은 편에 있는 방에는 빨간 고추가 놓여있었다. 오늘 아침 비가 오기 전 마당에 있던 것을 거둬놓은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가장 작은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었더니 빗자루, 항아리, 빈 행거, 뭔가가 들어 있는 것 같은 상자 등 온갖 잡동사니가 놓여있었다. 창고방이었다. 상자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 열어보려다가 손에 먼지가 너무 많이 묻어나서 다시 제자리에 두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먼지 때문에 코가 간지러웠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습해져서 그런지 맨발이 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거실로 나와서는 텔레비전 옆에 놓인 장식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먼지 하나 없는 장식장 안에는 색이 다 바랜 가족사진이 있었다. 가장 가운데에 할머니가 있고, 왼쪽에는 큰삼촌과 숙모 그리고 사촌 오빠가, 오른쪽에는 고모와 고모부 사촌 언니들이 서 있었다. 아빠가 없는 것을 보니 사고 이후에 찍은 사진인 듯싶었다. 만약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사진을 찍을 때 어디에 서 있었을까. 머릿속으로 열심히 그려봤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아빠가 저 사이에 서서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거실 한가운데 드러누웠다. 아무도 없어 조용하니 또옥 또옥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빗물이 새는 현관 천장을 보면서 어제저녁을 먹으면서 들었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보수공사를 한다고 했었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이 집을 손본다고. 할머니 말로는 자식들이 명절이나 휴가, 그리고 제사 때만 가끔 와서 지내는 집이니 그냥 두려고 했는데, 큰삼촌이 고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공사를 하게 됐다고 했다. 깨끗하게 오래오래 이 집이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게 리모델링의 주된 이유였다.

   그러면 원래 있던 흔적들은 다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안 그래도 흔적들이 이미 많이 흐려졌는데, 세월이 남기고 간 발자취를 뜯어서 고치고 다른 것들을 덧붙여서 가려버리는 걸 멀쩡하게 보존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상념을 끊어내듯 마당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산호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 하고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거실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 내게 ‘갈수록 닮아 간다’고 자주 중얼거렸다. 주어는 없었지만 누구에 대해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바라보면서 말할 때는 항상 아빠 이야기를 했으니까. 나는 그때마다 애써 못 들은 척 다른 짓을 했다.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할머니의 말을 누덕누덕 기워서 아빠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 속 아빠는 공부를 잘하고, 누워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인기가 많았고, 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거지로 엮어 놓은 말엔 공백이 너무 많아서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리운 건가. 할머니가 해준 말을 곱씹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들을 때나 잠깐 떠오를 뿐, 아빠의 얼굴은 여전히 흐릿했다. 그냥 막연히 나와 닮았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내가 닮았을 사람을 떠올리면서도 딱히 애틋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큰삼촌과 근처에 있는 사명대사공원에 갔던 일, 고모와 함께 한강이 보이는 호텔에 가서 밥을 먹고 마사지를 받았던 일…. 할머니 생신 때 큰삼촌네 가족과 고모네 가족이 모두 모여 솥뚜껑 닭볶음탕을 먹으러 갔었다는 이야기들. 나는 의미 없이 맞장구를 치며 설탕과 소금을 팍팍 넣고 찐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꼭꼭 씹어먹었다. 부러 왜 저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더 좋은 곳으로 데려 가줬을 텐데.”

    눈을 도르륵 굴리며 달달달 소리를 내는 선풍기를 바라봤다가, 거슬리게 주변을 윙윙 날아다니는 파리를 봤다가, 설탕과 소금을 팍팍 넣어 삶은 바람에 찐득찐득한 옥수수를 내려다봤다가, 할머니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아빠가 그럴지에 대해서는 이제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말해주는 아빠는 마냥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철 찰옥수수는 적당히 달고 짭쪼름 했지만, 어쩐지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나는 옥수수를 아주 오랫동안 꼭꼭 씹어 삼켰다.

 

 

    3일 만에 해가 떴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다가 집에 돌아갈 때쯤 되니 비가 그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집에만 있던 것이 답답해 근처 논밭으로 산책을 나가려는데, 후추가 떨어졌으니 근처 슈퍼에서 후추 좀 사 오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는 슈퍼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햇볕이 따가웠다. 잠시 마당을 서성이다가 이러다간 더위 먹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우산을 챙겨 온 것이 다행이었다. 양산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마땅치 않아서 그냥, 구멍이 뚫린 검은 장우산을 쓰고 걸었다. 마주치는 어른들은 맑은 날에 검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쏠리는 시선이 따끔따끔했다.

 

    몇 년 전에 시골에서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기억을 되짚으며 골목을 돌았다. 마을 회관 주변에 파란 간판에 빨간 글씨로 ‘슈퍼’라고 정직하게 쓰여 있던 작은 가게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길은 몰라도 마을 회관으로 가는 길은 알았으니 발길을 옮기면서 주저하지는 않았다. 더운 열기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헐떡대면서 겨우 언덕길을 걸어 마을 회관 앞에 도착했더니 그늘진 정자에서 수다를 떨고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우산을 좀 더 아래로 쓰고는 마을회관 옆에 있는 작은 건물로 향했다. 눈에 익은 간판이 보였다. 타박타박 걸어서 다가갔을까, 더러운 창 너머로 보이는 안은 휑 비어 있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뒤를 돌아봤다. 근처에 아는 슈퍼라곤 이곳 하나뿐이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고는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살피려고 했는데, 정자 쪽에서 거기 서서 뭐 하냐는 말이 들렸다. 천천히 뒤를 돌았더니 정자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의 시선이 와다닥 꽂혔다. 다가오라는 듯이 손짓을 하기에 우물쭈물하면서 걸음을 옮겨 정자로 향했다.

 

 “거기 왜 서 있어. 젊은 사람이 대낮부터.”

 “…여기 슈퍼 없어졌나요?”

 “어어, 거기 아줌마가 서울 가서 자식들이랑 산다고 작년에 문 닫았어. 근데, 누구길래 이 촌 동네까지 왔담?”

 “할머니 보러 왔어요. 그, 파란 대문….”

 “아아, 그 집 손녀? 그 아줌마가 회관에 와서는 엄청 좋아했지. 손녀딸이 놀러 왔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덧붙여 말했다. 지금은 할머니 심부름 나왔고요. 후추 사려고. 할머니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슈퍼는 정 반대에 있어. 그 파란 대문 집을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다리 근처로 쭉 가다 보면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 옆이야. 이 주변을 몰라 꽤 자세한 설명이었음에도 거리가 그려지지 않아 아리송하기만 했다. 애꿎은 입술만 깨물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묵례를 한 뒤 뒤를 돌았다.

 

 “근데, 그쪽 아줌마 막내아들이랑은 하나도 안 닮았는데?”

 “그러게.”

    할머니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슈퍼가 있다는 방향으로 걸었다.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바람에 발바닥이 화끈거렸고, 엄지발가락과 슬리퍼가 닿는 부분이 쓸려서 따끔거렸다.

 

    슈퍼는 생각보다 집과 가까웠고, 후추도 금방 샀지만 나는 한참이나 밖을 서성거렸다. 하루살이랑 모기가 날아다니고, 매미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울어대고, 덥기는 무진장 더웠지만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풀이 무성한 강변을 한참 서성이다가, 왜 이렇게 늦냐고 전화가 왔을 때쯤에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할머니를 도와 저녁을 만들었고, 밥을 먹었다. 젓가락질을 왜 그렇게 하냐고, 이런 면은 엄마를 닮은 거냐는 말을 들으며 입에 맞지 않는 나물 반찬을 이젠 조금 익숙하게나마 느릿하게 씹어 삼켰다. 아빠가 있었으면 젓가락질을 잘했을 텐데, 라고 한탄하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는 콩밥을 입에 양껏 욱여넣었다. 그래도 복스럽게 잘 먹는다며 할머니가 웃었다. 퍽퍽한 맨밥 때문에 목이 콱콱 막혔다.

 

 

 

 “그래서, 어땠어?”

 

   상념에 젖어있다가 옆에 서 있는 동료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린다. 옆에 있던 동료가 산호 씨, 많이 더워? 하고 쥐고 있던 손풍기를 내 방향으로 돌린다. 더운 바람 때문에 앞머리가 팔랑팔랑 줏대 없이 흔들린다.

 

 “조용해서 좋았어요. 할머니도 오랜만에 봐서 좋았고.”

 

   얼음을 입에 하나 더 털어 넣고는 우물댄다. 얼음은 금방 녹았다. 타지에서 보낸 며칠을 반추하다가, 물기 때문에 축축한 테이크아웃 잔을 꽉 쥔다. 마땅히 컵을 버릴만한 곳이 없다.

    띠링-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들린다. 발신인을 확인한다. 큰삼촌, 석 자를 보고는 아, 하고 탄식했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할머니가 이번 주말에 서울에 오시는 김에 같이 밥이나 먹자는 문자를 빤히 보다가 물기가 묻은 손으로 토독 답장을 보낸다. 그날은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다음에 봬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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