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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

by 황토 땅지기 19학번 김세현 2021. 8. 9.

서울-동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

권지민

 

    휴일에 집에 안 있고 밖에만 돌아다니면 월세가 아깝지 않냐는 말을 친구에게 했을 때, 친구는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알아듣고 크게 웃었다. 웃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고 진심으로 한 말이라 좀 머쓱해졌다. 이번 방학에도 집에 있는 것 외에는 대단한 계획은 없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을 예정이었다. 새벽까지 휴대폰을 보다가 오후 두 시에 일어나 버린 나를 보고 엄마가 가엽다는 듯이 보다가 말했다. 이번 방학에는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디라도 갔다 와. 어디라도, 라니 막연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으려고 했는데 엄마는 바로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가 사는 곳은 경기도였는데 정확한 지역은 내 기억에 없었다. 엄마는 이모도 괜찮다고 했으니 다음 주 중으로 다녀오라고 했다. 거절하기에는 이모를 본지도 너무 오래되었던 탓도 있었고 그럴듯한 이유도 없어서 나는 중학교 수학여행 이래로 아주 오랜만에 서울로 향하게 됐다.

 

    이모가 사는 동탄이라는 곳에 사흘 정도 머물기로 했다. 처음 듣는 지명이라 엄마에게 물었더니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시라고 설명했다. 그걸 들은 나는 서울 근처에도 아직 덜 발전된 곳이 있긴 있구나, 싶었다. 이모는 오랜만에 조카 보는 게 기쁘다며 왕복 비행기 표를 일찍 끊어주셨다. 나는 이모께 내가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나중에 다행히도 창가 자리로 표시된 예매 내역을 보고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타의로 떠나게 된 여행에 대해 나는 뒤늦게 그 이유를 고민했다. 엄마가 집에서 빈둥거리는 나를 어디로든 보내버리는 것과 이모를 오랜만에 보는 것 말고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별로 서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기도 했다. 어디라도 다녀오라고 말하던 엄마의 표정이 조금은 격앙되어 보였고 나는 엄마와 말다툼하는 것에 질려있었다. 그래서 내가 탄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며 이륙을 위해 속력을 낼 때도 나는 여행이 내게 큰 영향을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은 채였다.

 

 

   DAY 1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는 이륙 시간과 착륙 시간을 빼면 실제로 뜨는 시간은 이십 분도 안 됐다. 버스로 왕복 열 시간이 걸리던 수학여행 때와는 달리 멀미를 느낄 새도 없었다. 버스 안에서 배가 고파 급하게 먹어버린 과자가 속에서 튀어나오려던 걸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것들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내리자마자 이모에게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장이 오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환승 통로로 내려갔다. 출근 시간이라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오늘따라 사람이 많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다들 평일 오전의 피로를 등에 진 듯한 표정으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사람이 별로 없는 칸을 찾아 섰다. 나도 원래 일어나는 시각보다 반나절은 일찍 일어난 탓에 스크린 도어에 비친 얼굴이 누가 봐도 나 피곤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한시라도 빨리 내려놓고 싶었다. 이모에게 답장이 왔다. ‘그래~’ 평소에 엄마에게 자주 받는 문자와 닮아있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엄마에게 언니가 있다는 사실이 아리송했다. 엄마에게 엄마라는 이름 말고도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게 좀 어색했다고나 할까. 학교에서나 적어내던 엄마의 이름 석 자에서 성을 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엄마가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았던 어리숙한 존재였다는 걸.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들이 그때는 대단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모는 엄마와 닮은 얼굴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았고 이모는 고조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고조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도 없으면서 납득했다. 그 편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는 엄마를 닮지 않았지만 자랄수록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고 말해준 것도 이모였다. 엄마랑 닮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던 참에 얼굴이 닮아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묘했다. 그리고 정말로, 시간이 지날수록 거울에서 내 얼굴이 엄마와 점점 닮아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원망스러워져서,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짓을 그만뒀다.

 

   내가 엄마와 타협할 수 없을 정도로 닮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오래전부터 은연중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라날수록 혼자 해내야 하는 것들에 좌절할 때마다, 엄마는 그 시간을 길게 갖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로부터 모진 말을 듣고 다시 일어날 만큼 악바리는 아니었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위로라도 해 주기를 바랐던 나는 황망히 남겨져 망가진 속을 부여잡았다. 그 뒤로는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에 쌓인 상처나 고등학교 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로부터의 이별 통보까지 엄마에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입을 꾹 다문 채 버텼다. 거짓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고 그 무게는 말이 끝난 후에야 느껴졌다.

 

 

   발 앞에 햇빛이 비쳐 고개를 들었다. 한강의 화창한 풍경이 보였다. 멀리 뉴스에서나 봤던 국회의사당이 보여서, 정말 서울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야 하는 역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출입문 근처로 다가섰다. 문자가 왔다. 엄마로부터 도착했냐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곧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고, 나는 이제 지하철 내려요, 라고 보냈다. 길게 이어지는 소음을 끝으로 문이 열렸다. 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내렸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역 근처에서 이모를 기다렸다. 들이마신 공기에서 텁텁한 맛이 났다. 역 앞에 있는 넓은 도로로 차들이 연신 지나쳤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번잡함에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다 보면, 뇌가 멍청히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 시간은 내게는 너무 넘쳐나서 탈이었다. 불규칙적으로 공명하는 소음을 잠자코 경청하고 있다가 걸려온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근처에 다 왔다는 전화였다.

 

  이모의 차를 타고 오던 중 아침부터 별다른 것을 먹지 못한 속이 쓰려왔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배고프다고 했더니 이모는 집에 가자마자 밥부터 먹자고 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모가 말하기를 사촌 동생은 몇 달 전부터 재수 기숙학원에서 지내고 있고, 이모부는 본집에 가셨다고 했다. 서 있기만 해도 느껴지는 새집의 분위기와 향기 덕분에, 밥을 먹은 후 나는 조금 어색하게 늘어졌다. 3일 동안 쓰게 된 사촌 동생의 방은 더더욱 그랬다. 언뜻 보면 새 방 같을 정도로 주인의 온기를 잃은 지 오래된 방이었다. 밥 먹는 와중에도 연신 하품을 하는 나를 보며 이모는 밥 먹고 눈 좀 붙여도 된다고 했는데, 그러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방이었다. 나는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열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 급하게 챙긴 필름 카메라가 옷 사이에 껴 있었다. 엄마가 가격을 듣고 또 뭐라 말을 얹을까 봐 몰래 산 것이었다. 몇 번 정도 남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괜히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가져왔다. 뭔가 찍어보려고 창밖을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다가 그만뒀다. 손톱보다 작아진 낯선 도시의 풍경에 빨리도 지루해져 버렸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려다 말고 그제야 엄마에게 여태 전화를 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엄마의 전화번호가 띄워진 화면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문자를 보낼까 하고 ‘이모 집 도착했어요’ 라고 쓴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그냥 그대로 휴대폰을 뒤집었다. 쏟아지는 졸음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가끔 낮잠을 깊게 잔 후에 일어나면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혹시 아주 긴 잠을 자버려서, 다음 날 저녁에 일어난 것은 아닌지. 생각보다 푹 잠들어버린 것 같아 나는 혼자 머쓱해졌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날짜는 변하지 않았고 시각은 오후 여섯 시를 좀 넘겼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부재중 전화 세 통이 와 있었다. 목이 칼칼했다. 열어둔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화장실을 갔다 나오니 이모가 거실에 있었다. 너무 깊게 자서 깨우려다 말았다고 했다. 막 깬 탓에 힘이 없는 다리를 끌고 소파에 앉았다. 단조로운 톤의 아나운서가 전하는 소식이 흘러나오는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어디 갈지는 정했어?”

“……아뇨.”

“여행 계획 이런 것 안 짜왔어?”

“네. 제가 계획이랑 별로 안 친해서요.”

  이모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것처럼 보여서, 먼저 이모에게 물었다. 왜요?

 

“아니, 너희 엄마는 항상 계획을 짜는 편이니까.”

“아…. 네.”

  엄마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 이런 게 싫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엄마와 연결되고 마니까. 그리고 내가 엄마와 닮지 않은 부분들이 더욱 튀어나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니까. 어쨌든 변명을 하자면, 애초에 타의로 끌려온 여행에 내가 여행을 짜기가 묘했다.

 

“수현이가 아까 전화 왔거든. 너 도착했냐고.”

“…….”

“전화가 안 와서 기다리다가 전화했다더라.”

“너무 피곤해서 까먹은 것 같아요.”

“그래, 피곤해 보이긴 했어.”

“근데……음, 이모. 우현이 있잖아요. 재수 잘 되어가요?”

 

   이모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힘들지만 본인 의지로 시작한 것이라 그런지 싫은 소리를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그런 것들은 별로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의미 없이 부유하던 대화는 이모의 저녁 먹겠냐는 말에 일단락됐다.

 

   저녁을 먹은 뒤 이모가 드라이브를 제안했고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빈손으로 나오려다가 필름 카메라를 챙겼다. 이모가 필름 카메라에 대해 먼저 물었을 때, 나는 용돈을 모아 샀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3만 원 아래의 저렴한 것을 샀지만 필름 값이니 현상 값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용돈으로 생활하는 내게는 조금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휴대폰 안에서 썩혀지는 무의미한 사진들보다 더욱 기억에 남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차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번화가의 도로를 조금 빠르게 달렸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목덜미가 시원했다. 웬만하면 새벽까지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우리 동네와 달리 이곳은 밤바람이 제 역할을 했다.

 

   공기가 별로라서 드라이브를 해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일까 하고 염려했는데, 그렇게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배가 불렀고 더는 졸음이 몰려오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기분이 나아졌다. 이모는 생각보다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이 오히려 편안했다. 그러다가 문득 달리는 차 안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불빛이 너무 많이 켜진 아파트 단지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먼 풍경만 남은 곳을 지나칠 때 셔터를 눌렀다.

 

“잘 찍힌 거 같아?”

“모르겠어요. 사실 그냥 달리는 차에서 찍으면 어떨지 궁금해서 찍어본 거라.”

“닮았네.”

“네?”

“수현이도 사진 찍는 거 좋아했거든.”

 

   또 닮았다니. 나는 입을 다문 채로 필름 카메라에 달린 끈이 손목에 맞도록 당겼다. 이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수현이도 엄마 몰래 필름 카메라 사서 가끔 찍고 다녔어. 그냥 싼 것 하나 사도 모자랄 판에 좋은 게 꼭 갖고 싶다고, 세뱃돈도 안 쓰고 용돈 아껴서 샀었어. 비싼 카메라는 필름 값도 비싸니까, 한 번 찍어달라고 장난으로 말해도 진지하게 거절하고. 그렇게 말하던 이모가 그때의 장면을 떠올렸는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내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엄마가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니 상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져서, 창밖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를 가늠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어서 필름 카메라에 대해 말 하나 꺼내지 않은 게 머쓱해졌다. 그리고 정말 닮아있는 어릴 적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눈을 감았다.

 

“피곤해?”

“아뇨, 눈이 간지러워서요…….”

“갑자기 엄마 얘기를 하니까 눈이 간지러워?”

“…….”

“농담이야. 어, 이제 괜찮은 거 같은데.”

 

   이모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애써 웃은 나는 한숨을 삼켰다. 사실 있잖아요, 이모. 저 엄마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기에는 내 입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나는 다시 돌아갈 때까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집에 돌아가 카메라를 확인했더니 남은 횟수는 두 번뿐이었다.

 

 

   DAY 2

 

   낮잠을 꽤 잔 탓에 늦게 잠들었지만 일찍 일어났다. 거실로 나오니 이모는 어디 갈 곳을 정해둔 사람처럼 이미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로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 불안했지만 간밤 모기에 물린 다리를 긁는 것에 열중했다. 아침밥을 먹던 중 이모가 전시회에 가겠느냐고 했다. 설마 싶어서 무슨 전시회냐고 물었더니 필름 사진 전시회라고 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가겠다고 대답했겠지만 엄마에 대해 들은 이후에는 무어라 말을 얹기도 어려웠다. 밥알만 씹으며 대답을 하지 않는 내가 답답했는지 이모가 먼저 물었다.

 

“갈래?”

“아뇨, 아.”

“왜. 아무래도 별로야?”

“…….”

“너라면 좋아할 것 같아서 어제 찾았는데.”

“…….”

“이번 주가 마지막 전시라고 하더라고.”

“갈게요.”

 

    이모가 미소를 지었다.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모와 엄마가 닮은 점이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당신 하고 싶은 대로 꼭 해내고 만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 방식에서의 차이가 컸지만. 그대로 따라가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내게는 준비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시무룩해 있으려니까, 이모가 기분 다운시키려고 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진심인 것 같아서 나는 알겠다고 했다.

 

   전시회가 열리는 곳은 서울에 있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서울로 향하는 차들이 꽤 많았다. 나는 한쪽에 기댄 채로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화창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셨기 때문이었다. 자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전시회가 열리는 건물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새벽에 잠드는 건 어쨌든 피로한 일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인 채 잠들었더니 목이 뻐근했다.

 

   전시회장에 들어가자 사람들 몇몇이 이미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어느 쪽부터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이모도 나와 따로 구경하려는지 내 반대쪽으로 걸었다. 사진들은 역시 수준급으로 찍힌 것들 뿐이었다. 나도 항상 이렇게 잘 찍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묘미로 여기면서도 인화된 결과물을 보고 실망감에 젖기도 했으니 말이다. 진달래꽃들이 핀 언덕을 찍은 사진 앞에서 나는 괜히 내 카메라를 살폈다. 아껴서 쓸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지만 기왕 서울 여행을 올 거였다면 조금 남겨둘 걸 싶었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온 첫날 들떠서 이것저것 찍은 게 오산이었다.

 

   한 사진은 등산 가방을 멘 여자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전시된 사진들은 보통 오래된 건물 외벽에 붙은 네온사인과 간판, 한강의 아침 풍경 등 사람이 빠진 풍경들이라, 그 중에서도 눈에 띄었다. 구석의 작품 설명에는 사실 작가가 찍은 사진이 아닌 작가의 딸이 찍은 사진이라고 되어있었다. 작가와 작가의 딸이 지리산 등산을 위해 단둘이 떠난 여행 도중의 사진이었다. 설명을 보고 사진을 다시 보니 다른 사진들에 비해 좀 더 서투른 느낌이 났다.

 

   나도 사람보다는 풍경을 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골목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길고양이들이나 가로수 아래에 작게 핀 들꽃 같은 것들을. 사람을 찍는 건 그것보다 훨씬 어렵기도 했고, 딱히 찍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필름이 아깝다기보다는 사진으로 담을 만큼 무언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진사의 딸처럼 엄마를 찍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엄마와 어딘가 가는 건 웬만해서는 없었으니까.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엄마와의 시간을 거절해왔고 어느 시점부터는 엄마도 더이상 내게 묻지 않았다. 어차피 안 갈 거지? 하고 말하던 엄마에게 괜히 억울해졌었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나와 엄마의 간극이 느껴져서 비참해졌다. 엄마와 닮기는커녕 맞지 않는 부분이 드러날 때마다 감정으로 싸움하기는 두려웠다. 옆에 이모가 다가와 섰다.

 

“무슨 사진이야?”

“아…….”

  이모가 설명란을 들여다봤다.

 

“딸이랑 같이 등산을 갔네.”

“……그러게요.”

 

   말없이 사진을 응시하던 우리의 침묵을 휴대폰 알림 소리가 깼다.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오늘은 뭐 할 거야?’ 엄마랑 이렇게 자주 문자 할 일이 이후에도 있을까. 나는 빈칸 속에서 깜빡이는 막대를 바라보다가, 이모랑 사진 전시회에 왔다고 보냈다. 고민하다가 필름 카메라 사진이라고도 덧붙였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시회장을 나오자 이모가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오겠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서서 건물을 바라봤다. 하얀 벽의 이곳저곳에 거뭇한 때가 묻어 회색빛이 돌았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건물이었다. 서울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라도 볼 수 있는.

   이번에 필름을 다 쓰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건 그만둘 생각이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건물의 정수리 위로 흘러가는 희묽은 구름 조각을 배경으로, 건물의 윗부분을 찍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억에 남길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단순한 기억이라기에는 좀 더 복잡하고 잊히기 쉬운 것이었다. 마침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나중에 어땠는지 꼭 엄마한테 얘기해줄 수 있어?’ 나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꼭 그러겠다고 보냈다.

 

 

 

   DAY 3

 

   돌아가는 비행기는 오후 세 시였고 내가 일어난 것은 오전 열한 시였다. 네 시간은 어딘가를 찾아가기에도 공항에 바로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나는 하루 정도는 나답게 이모네 집에서 쉬기로 했고 이모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밖은 작열하는 태양이 더위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방에서 지내는 동안 흩어놓은 짐들을 하나하나 다시 가방에 챙겼다. 마지막으로 남은 짐을 봤다.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은 필름 카메라였다. 더 이상 무엇을 담아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공항 검색대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작별 인사를 하는 이모를 바라봤다. 이모는 뭐 까먹은 거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이모 포즈 한번 취해볼래요, 하며 카메라를 흔들어 보였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이모는 브이 포즈를 양손으로 해 보였다. 나도 웃으며 셔터를 눌렀다. 돌아가면 새 필름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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