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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실은 제가 고백할게 있는데요

by 황토 땅지기 19학번 김세현 2021. 8. 9.

 

태국 방콕

실은 제가 고백할게 있는데요

허진

 

https://youtu.be/cefCdPe-U0Y

 

   제가 예전에 방콕에 갔던 적이 있어요.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다.

    스물두 살 무렵, 삼촌이 아는 사람을 만나러 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함께 가게 해달라, 경비는 내가 대겠다, 왔다 갔다 비행기만 함께 타고 그 후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사정한 끝에 나는 삼촌과 동행할 수 있었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를 쳐뒀지만, 정작 돈이 얼마 모자라 적금을 해지할 생각이었다. 삼촌은 눈치껏 지인에게 나의 숙박까지도 부탁해줬다. 덕분에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했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은 채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삼촌의 일정에 따라가고 싶었던 이유는, 그러니까…, 난 그맘때 한 부분이 결여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삶의 의지에 대한 그런 부분이 없었다. 어떤 큰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냥 그랬다. 생각만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그것의 반복, 생겨난 체념. 체념이 공허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채워지지 않았다. 구태여 그걸 채우려는 노력이 없으니 자연히 비어있는 인간으로 살게 되었다.

    늘 차에 치여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도가 갑자기 나타나 나를 죽여줬으면. 갑자기 야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를 만나 찢겨 죽었으면. 그런 생각만 하다 어느 순간에서야 갑자기 그게 무서워졌다. 호흡의 이유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살아야만 하는 도시를 도망치듯 벗어나야만 했다. 그게 전부였다.

 

    삼촌이 만난다던 지인들은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부부였다. 그중 남편이 삼촌과 고등학교 동창이라 했다. 삼촌은 카오산 로드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전 세계 젊은이들의 혈기왕성함을 마음껏 들이마시라 했다. 자유의 향기가 나는구나. 그렇게 말하며 익숙하게 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들어가는 삼촌의 뒤를 놓칠세라 따라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는 지어진 지 오래된 듯 보였고, 이곳저곳 오브제들이 난잡하게 놓여있었다. 은색 코끼리, 희고 눈부신 사원, 듬성듬성 칠이 벗겨진 냉장고 자석 같은 것들. 벽에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카운터 뒤로는 세계 각국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들이 일렬로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있었다. 지도에는 알록달록한 스티커들이 마구잡이로 자리하고 있었다. 삼촌은 이곳이 젊은 애들 사이에서 핫하다고 했다. 한국인이 찾는 태국 특유의 감성을 잘 살렸다나. 내겐 그저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느낌을 애써 포장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대학 동기 중 유독 이런 어수선한 느낌을 좋아하는 아이가 떠올랐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작은 소품마저 신경 써서 배치한다는, 그러나 내 눈에는 너무도 어지러운. 그 아이를 생각하니 이곳이 핫플레이스인 이유를 왠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디에나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독특한 취향을 잘 노린 것 같았다.

 

    삼촌의 또래라기엔 어려 보이는 부부는 게스트하우스 입구의 카운터에서 우리를 반겼다. 그들은 둘이서, 왔니, 어머 네가 같이 온다는 조카구나, 반가워, 우리는 삼촌 친구야,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러, 오느라 힘들진 않았니, 등 여러 말을 한 번에 쏟아냈다. 무슨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지 고르는데, 그사이에 아줌마는 짐부터 풀자며 우리를 방으로 이끌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날 밤, 우리는 약소한 파티를 열었다. 이미 그곳에 묵고 있던 국적 모를 외국인들과 다 같이 모여 밤새 술을 마셨다. 태국에서는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네덜란드 사람도 모두 이방인이었다. 우리는 여행객이라는 공통된 처지 하나로 친구가 됐다. 그날 마신 맥주도, 그곳의 분위기도, 초면인 사람과의 첫 만남도 모두 완벽했다.

그 소리를 듣기 전까지.

 

 

      주방에는 거대한 냉장고가 있었다. 자석으로 이것저것 붙어 있는 냉장고 앞에 가만히 서면, 냉장고는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큰 소리를 냈다. 소음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걸 고치느니 냉장고를 바꾸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말한 그 소리는 냉장고, 가 아닌, 그 옆에 있는 문으로부터 나는 소리였다.

    방문은 아주 작았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촌은 처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문의 존재를 알아채고 주인 부부에게 정체를 물었다. 그들은, 그냥 진짜 문이라고 했다.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있었던 문인데, 방이라 하기에 너무 작은 공간이라 그냥 비워둔다고. 그냥 인테리어 정도로 여긴다는 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기괴할 정도로 완벽하게 무심한 눈이었다. 관심 없어 보이는 법을 터득한 사람처럼.

 

 

     파티가 끝난 새벽, 잠시 잠들었던 나는 심한 갈증을 느껴 다시 눈을 떴다. 새벽의 냉장고는 낮보다 더 시끄러웠다. 냉장고의 문을 열고, 물을 찾아 마신 뒤 다시 문을 닫았다. 한 번 열렸다 닫힌 냉장고는 얼마간 소음을 멈췄다. 집안에 적막이 흘렀다.

적막을 깬 것은 여성이 흐느끼는 소리였다. 소리는 냉장고 옆의 문 안에서 났다. 처음에는 주인아줌마가 울고 있나 싶었지만, 아줌마의 목소리보다는 더 높고 가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아줌마는 그 문을 인테리어로 여긴다고 했다. 굳이 그 안에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더 어린 목소리 같기도 했다.

 

 ㅇ……. …ㄹ…. 이……ㅅ.

 

    그 말이 들리자마자 장난처럼 냉장고의 소음이 다시 시작됐다. 내가 들어버린 의문의 목소리를 감추겠다는 듯 더 힘차게 소리를 냈다. 어찌어찌 방에 돌아와 삼촌이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줄 때까지도 나는 그 10초가 실감 나지 않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쿵거렸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몸 전체가 흔들렸다.

 

 여기 사람 있어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아줌마 아저씨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나와 삼촌에게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느냐 물었다. 이불을 걷어차면서까지 편하게 잤던 삼촌은 당연히 편했노라 대답했고, 나도 한 박자 늦게 푹 잤다 대답했다. 타이밍이 조금 어긋난 내 대답을 눈치챈 아줌마는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표정을 굳혔다.

 

―어디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예, 뭐. 잘 잤어요.

 

    아줌마의 표정을 본 나는 새벽의 그 소리에 대해 절대 말해선 안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이유 없는 본능이었음에도, 그 느낌이 실로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애써 무시하고 입을 꾹 닫았다. 눈길은 한동안 나를 따라왔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지. 아줌마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삼촌은 수저를 내려놓고 배부르다―하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새벽에 들었던 작고 연약한 소리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도중에도 불쑥불쑥 생각났다. 누적된 기억들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 때도 그 일을 잊지 못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건 조금 두려운 일이었다. 아니, 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두려움보다는 궁금증이 더 컸다. 대체 뭘까? 벗어나고 싶었던 곳을 탈출해 도달한 낯선 땅에서는 이런 일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이 집에서 나의 인생에 아주 거대한 충격을 안길 사건이 하나 터지길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제 친구가 된 일행 중에서는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해미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였다. 타국에서 만난 같은 국적의 사람이라는 점, 비슷한 또래라는 점은 우리를 급속도로 친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도 내가 해미에게 강하게 끌린 이유는… 해미도 무언가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행색이 남루하다는 게 아니라, 정말 무엇 하나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해미는 자신의 구멍을 끊임없이 채우려고 하는 것 같이 보였다. 해미는 지나치게 밝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더 어두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비어있는 부분을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해맑았다. 나는 그런 해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같지 않다는 점에는 실망했다.

 

    우리는 카오산의 한 노상에서 팟타이를 먹었다. 해미는 독일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친해진 룸메이트들과 이번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녀는 팟타이를 정말 잘 먹었다. 점원이 우리 앞에 접시를 내려주자마자 젓가락을 들이댔다. 젓가락을 거꾸로 잡고 먹으려 하는 것을, 내가 알아채 돌려주지 않았다면 계속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우고, 배가 부르다면서도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한국이랑 차원이 달라. 스시 먹으러 일본 가는 사람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우리는 노상 앞의 한 태국인이 한국말로 존나 더우니 발 마사지 좀 받으라고 호객행위 하는 것을 들으며, 이런저런 정보를 교환했다.

 

―저 사람, 태국인이 아니라 네팔사람이야.

―한국말 하는 사람?

―응. 첫날에 이야기를 좀 했었는데, 내가 한국인인 걸 한 번에 알아채고 한국말로 어디서 왔는지 묻더라고.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도 해줬어.

 

    해미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애와 같이 있으니 나도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해줘야 할 것 같은 당위를 느꼈다. 그래서 해미에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줬다. 냉장고 옆의 문, 그 안에서부터 들었던, 분명히 여기 사람 있다고 했던 그 목소리를. 그리고 날 보던 아줌마의, 미묘하게 굳었던 그 표정을. 해미는 도시 괴담을 듣는 사람처럼 건성으로 반응하다가, 갑자기 눈을 빛냈다. 너무도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오늘 확인해보러 갈래?

    그래서 우리 둘은 새벽에 같이 그 문 앞에 가기로 했다. 두 시쯤에 밖으로 나와. 해미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두 시, 라고 할 때 손가락을 브이 자로 펼쳐 보였다.

 

 

 

약속한 때가 되어 거실로 나가자 해미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그녀는 내가 방에서 나오는 걸 보고 작게 손짓했다. 냉장고는 여전히 소음을 뿜어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서로 눈치를 보며 소음을 멈출 타이밍을 쟀다. 그러다 해미가 먼저 연다, 하고 짧게 말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게스트하우스 안에 적막이 찾아왔다. 우리는 문에 최대한 얼굴을 붙이고 소리를 들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야. 안 들리는데?

―……. 조금 더 있어 볼래?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에 냉장고의 소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내가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었다 닫았다. 문에 귀를 바싹 붙였는데도, 마찬가지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후로 냉장고를 몇 번이나 더 열었다 닫았지만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탕이네…… 해미는 그렇게 말하며 물을 꺼내 마셨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진짜 맞아?

―정말이야…

    하지만 정말이라고 하면서도 정말이 맞는가, 싶었다. 내가 별것도 아닌 것으로 잠시 망상했던 건 아닐까. 벽을 타고 울리는 다른 방의 평범한 대화 소리일 수도 있는 거였다.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착각일지도 몰랐다.

 

―같이 있어서 그런가? 혼자 있을 때만 들리는, 뭐 그런 거 있잖아.

 

    해미는 꽤 그럴듯한 추측을 내었다. 그래, 두 사람이라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공포영화에서든 꼭 혼자 있을 때 사건이 터지곤 하니까. 우리는 내일 각자 다시 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두 시쯤 혼자 와서 확인하고, 해미가 세 시쯤 혼자 와서 확인하는 것으로. 그 후에 아침이 밝으면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그런 계획 아닌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다른 방에 묵고 있는 객들이 거실로 잠시 나왔다. 우리는 대충 인사한 채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삼촌은 유튜브를 보다 잠들었는지 화면을 환하게 켜두고 있었다. 삼촌의 핸드폰 화면을 꺼주고 이불을 대강 정리해줬다.

    벽을 타고 옆 방에서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웅웅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째. 저 안에 사람이 있다. 둘째. 저 안에 귀신이 있다. 셋째. 벽을 타고 들려오는 다른 방의 대화 소리다. 넷째. 실은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내가 환청을 들은 것이다.

 

    그래, 문을 열어 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지? 간단한 문제였다. 그냥 문을 열어버리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정말 그 방 안에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무슨 수로? 그 일에 관여했다간 골치 아파지는 게 아닐까? 특별한 일을 기대했다고는 했지만, 범죄 사건에 연루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있다면? 귀신의 존재를 본 적이 없어서 그 뒤의 일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시체로 발견되거나, 죽은 듯 돌아와 뜬눈으로 밤을 새우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열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이대로 궁금해하다 집으로 돌아가겠지. 집으로 돌아가서도 열어볼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어느 모로 보나 그냥 문을 한번 확 열어젖히고 마는 게 답이었다. 설령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냥 모른 척하고 문을 닫아버리면 아무도 모른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의 상황을 봐줄 만한 상황이 아니다. 어쨌든 나는 문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다시 방을 나섰다. 더 앉아있었다간 그 결심을 포기하고 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문을 왜 열지 못했지, 하는 생각을 할 때부터, 문을 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의 객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갔는지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세 시 십 분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소음이 멈췄다. 고요한 거실. 문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귀를 기울였다.

 

ㄷ…. 세……. 사…….

   조용히 다가가 문고리에 손을 올린다. 벌컥. 무언가에 쫓기다 그 문을 발견한 사람처럼 급하게 문을 열었다.

   해미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녀가 나를 올려다본다. 해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속삭인다. 도와주세요……. 사람 있어요…….

   나는 해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왜 열어? 재미없게.

    쪼그리고 있던 해미가 무릎을 잡고 일어났다. 문을 연 나를 보며, 왜 문을 여느냐고 물었다. 오히려 물어볼 것은 내 쪽이 더 많았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었는지, 그전의 소리 모두 해미가 낸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미가 웃었기 때문이었다. 아하하―. 재미있네, 이거.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뒤로 걸어갔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렇게 나를 노려보며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나를 똑똑히 쳐다보고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가 극의 끝인줄 아는 사람들은 하나둘 창을 떠난다.

그렇게 모두가 이곳을 떠나고 오직 한 사람만이 내 앞에 남는다. 아마 당신인 듯하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다. 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 앞에 글자를 내어 보인다.

 

그런데요.

 

당신은 무언가 남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스크롤을 내린다.

 

.다니입미해 이름이 제

 

당신도 창을 빠져나간다.

극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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